들국화에 관한 시 모음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 들국화
꿈을 잃고 숨져 간
어느 소녀의 넋이
다시 피어난 것일까
흙냄새 풍겨 오는
외로운 들길에
웃음 잃고 피어난
연보랏빛 꽃
하늘만 믿고 사는 푸른 마음속에
바람이 실어다 주는
꿈과 같은 얘기
멀고 먼 하늘 나라 얘기
구름 따라 날던
작은 새 한 마리 찾아 주면
타오르는 마음으로 노래를 엮어
사랑의 기쁨에 젖어 보는
자꾸
하늘을 닮고 싶은 꽃
오늘은
어느 누구의 새하얀 마음을 울려 주었나
또다시 바람이 일면
조그만 소망에
스스로 몸부림치는 꽃
(이해인·수녀 시인, 1945-)
+ 들국화
높푸른 하늘 아래
꿈꾸는 고운 자태
내 고향 귀뚜라미
슬피 우는 저 하소연
흐르는
청풍명월에
말 못하는 그리움.
(이풍호·재미 시인, 충남 예산 출생)
+ 들국화처럼
나즉히 살아갈 수는 없을까
바람에 산들산들
흔들리면서
무서리 내린 아침
들국화처럼
흐르는 강가에서
하이얀 꽃잎만
나풀대면서
(손상근·시인)
+ 들국화
사랑의 날들이
올 듯 말 듯
기다려온 꿈들이
필 듯 말 듯
그래도 가슴속에 남은
당신의 말 한마디
하루종일 울다가
무릎걸음으로 걸어간
절벽 끝에서
당신은 하얗게 웃고
오래된 인간의 추억 하나가
한 팔로 그 절벽에
끝끝내 매달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곽재구·시인, 1954-)
+ 들국화
늦가을 햇살에
몸 씻는 들국화
잠자리 입맞춤에 수줍어하네.
애기 바람 쉬어 가는
논두렁 풀섶에서
높푸른 하늘을 사모하며 피는 꽃.
노란 향기 흩어지는
가을의 끝에 앉아
무심한 하늘 이고 다소곳이 산다네.
새벽이면 잦아드는
한 움큼 찬 서리에
지쳐가는 가을을 떠나 보내며
가을의 마지막 그림자로 남아
잊혀진 듯 살아가는
가을 들국화
(최해춘·시인, 1957-)
+ 들국화를 위하여
꽃을 피우지 못한들 어떠랴.
두 팔 벌려 서 있는 것만으로
가슴 가득 하늘을 마실 수 있고
씨를 맺지 못한들 어떠랴.
향기를 피우는 것만으로
달빛 사랑 그 눈빛 다가오는데
돌보지 않는다고 시든 적 없고
사랑하지 않는다고 눈물 흘리지 않는
들국화를 위하여
조금은 외로운 곳에서
그리움 가득
그대 이름 불러보는 것만으로
황토밭은 알차게 익어가는데
(이남일·시인, 전북 남원 출생)
+ 들국화
바람이 지나가는
그런 산기슭
귀뚜라미 우는
그런 풀밭에.
불볕 한여름을
잡초 속에서
쑥부쟁이로 서럽게
숨어살더니,
어느 무서리 내린 날,
아침에사
참았던 웃음
한꺼번에 터뜨리는
들국화야.
한때 뽐내던 모든 이파리들
시들어 쓰러졌어도
서릿발에 세수한 듯
오히려 상쾌한 웃음
들국화야.
어두운 그늘 헤치고
피어났기에
하늘에 사무치는 기쁨
아우성
아우성아.
송이송이
별눈 반짝이는
영아의 얼굴이 보인다.
속이빨 하얀 순이의
함박웃음이 흩어진다.
(김녹촌·아동문학가, 1927-)
+ 들국화
삼월 목련처럼
눈부시지 않네
오뉴월 장미같이
화려하지 않네
가슴 설레는 봄과
가슴 불타는 여름 지나
가슴 여미는
서늘한 바람결 속
세상의 어느 길모퉁이
가만가만 피어
말없이 말하고
없는 듯 그 자리에 있는 꽃
찬 서리와 이슬 머금고
더욱 자기다운 꽃
한철 다소곳이 살다 지고서도
그리운 여운은 남는
인생의 누님 같고
어머님 같은 꽃
(정연복·시인, 1957-)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