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들꽃 시 모음
+ 풀꽃
맑은 마음을 풀꽃에 기대면
향기가 트여 올 것 같아
외로운 생각을 그대에게 기대면
이슬이 엉킬 것
같아
마주 앉아 그냥 바라만 본다.
눈 맑은 사람아
마음 맑은 사람아
여기 풀꽃밭에 앉아
한나절이라도 아무
말 말고
풀꽃을 들여다보자.
우리 사랑스런 땅의 숨소릴 듣고
애인같이 작고 부드러운
저 풀꽃의 얼굴 표정
고운 눈시울을 들여다보자.
우리 가슴을 저 영혼의 눈썹에
밟히어 보자.
기뻐서 너무 기뻐
눈물이 날 것이네.
풀꽃아
너의 곁에 오랜 맨발로 살련다.
너의 맑은 얼굴에 볼 비비며
바람에 흔들리며
이 들을 지키련다.
(이성선·시인, 1941-2001)
+ 들꽃
주인 없어 좋아라
바람을 만나면 바람의 꽃이 되고
비를 만나면 비의 꽃이 되어라
이름 없어
좋아라
송이송이 피지 않고 무더기로 피어나
넓은 들녘에 지천으로 꽂히니
우리들 이름은 마냥 들꽃이로다
뉘 꽃을
나약하다 하였나
꺾어 보아라 하나를 꺾으면 둘
둘을 꺾으면 셋
셋을 꺾으면 들판이 일어나니
코끝을 간지르는 향기는
없어도
가슴을 파헤치는 광기는 있다
들이 좋아 들에서 사노니
내버려두어라
꽃이라 아니 불린들 어떠랴
주인
없어 좋아라
이름 없어 좋아라
(구광렬·시인, 1956-)
+ 들꽃
1
밤하늘이
별들로 하여
잠들지 않듯이
들에는 더러
들꽃이 피어
허전하지 않네.
2
너의 조용한 숨결로
들이
잔잔하다.
바람이
너의 옷깃을 흔들면
들도
조용히
흔들린다.
3
꺾는 사람의 손에도
향기를 남기고
짓밟는 사람의 발길에도
향기를 남긴다.
(박두순·아동문학가)
+ 들풀이 되어라
높은 누마루에서 내려와
맨발로 발레리나처럼
세운 발끝을 땅에 깊이 꽂고
들풀이 되어라
그리하여 땅의 온도와
미세한 울림까지도
예민하게 감지하는
땅을 덮은
들풀이 되어라
들쥐가 지진을
예감하듯
들새가 천둥을 예지하듯
역사의 온갖 징후를
선각하여
바람이 불 때마다
그 선각을 소리 높이
함성 하는
푸르고 싱싱한
들풀이 되거라.
(인병선·민속학자)
+ 들꽃의 노래
유명한 이름은
갖지 못하여도 좋으리
세상의 한 작은 모퉁이
이름 없는 꽃이 되어
지나가는 사람들이
몰라봐도 서운치 않으리
해맑은 영혼을 가진
오직 한 사람의
순수한
눈빛 하나만
와 닿으면 행복하리
경탄을 자아낼 만한
화려한 꽃은 아니더라도
나만의 소박한 꽃과 향기로
살며시 피고 지면 그뿐
장미나 목련의 우아한 자태는
나의 몫이 아닌 것을
무명(無名)한
나의
꽃, 나의 존재를
아름다운
숙명으로 여기며 살아가리
(정연복·시인, 1957-)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