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m]/poet 채희숙

물향기수목원 연꽃 / 연꽃에 관한 시 12 편

소유와존재 2017. 7. 2. 06:40

 

+ 연꽃등

돼지고기 쇠고기
시뻘겋게 걸어 놓고 파는 푸줏간에
언제부터인지
연꽃등 하나
커다랗고 아름다운 연꽃등 하나
함께 걸려 있다
주인은 아마
연꽃등을 바라보며
고기를 썰어 파는가보다
부처님 살 베어 팔 듯
고기를 썰어 파는가보다.
(나태주·시인, 1945-)

 

 


 

+ 연꽃

생물의 주검 온갖 오물들
부패로 질펀하게 흔들리는 늪속일망정
인내의 뿌리 깊디깊게 박고

넌 얼마나
바보 같은 용서의 가슴 가졌길래
그토록 곱게 웃을 수 있느냐
(손석철·시인, 1953-)

 

 

 

+ 연꽃을 보며

천지에 귀 하나만 열어 놓고
바람소리 물소리 멧새소리
그 소리만 들으리라
천지에 입 하나는
사시사철 빗장으로 걸어 매고
고갯짓으로 말하리라
좋은 것도 끄덕끄덕
싫은 것도 끄덕끄덕
끄덕이는 여운 속에 언젠가는
마알간 하늘이 내 눈 속에 들어와
곱게 누우면
내 눈은 하늘이 되어
바다가 되어
귀 닫아도 들을 수 있는
눈감아도 볼 수 있는
부처 같은 그런 사람 되면
내 온 살과 영혼은
꽃이 되리라
연꽃이 되리라
(이영춘·교사 시인, 강원도 평창 출생)

 

 

 

+ 연꽃

초록 속살 빈 가슴에
떨어지는 이슬비
수정으로 토해내는
깨끗한 연잎 하나

세월의 틈바구니에
삶의 몸을 닦는다

진흙 깊은 연못
물안개 떠난 자리

햇살 퍼질 때

수면 위에 꽃불 밝히고
두 손 모아 합장한다.
(노태웅·시인)

 

 

 

+ 연꽃

연잎에 맺힌 이슬방울 또르르 또르르
세상 오욕에 물들지 않는 굳은 의지

썩은 물 먹고서도 어쩜 저리 맑을까
길게 뻗은 꽃대궁에 부처님의 환한 미소

혼탁한 세상 어두운 세상 불 밝힐 이
자비의 은은한 미소 연꽃 너밖에 없어라.
(이문조·시인)

 

 

 

+ 연꽃

霞光 어리어
드맑은 눈썹

곱게 정좌하여
九天世界 지탱하고

世情을 누르는
정갈한 默禱

닫힌 듯 열려 있는
침묵의 말씀 들린다.
(김후란·시인, 1934-)

 

 

 

+ 연꽃

진 자주 꽃잎을
겹겹으로
아침이슬 머금고
빤짝이는
너 모습 영롱도 하다

진흙에서
꽃 피우는
성스러움 크디커
너의 아픔 오죽하랴

인당수에 몸 던진
효녀 심청
너를 타고
환생하였고

아름하고 참되어
부처님의
좌대되어
만 사람의 사랑 받아
부처님 꽃이로다
(박태강·시인, 1941-)

 

 

 

+ 연꽃이었다

그 사람은,
물 위에 떠 있는 연꽃이다
내가 사는 이 세상에는
그런 사람 하나 있다

눈빛 맑아,
호수처럼 푸르고 고요해서
그 속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아침나절 연잎 위,
이슬방울 굵게 맺혔다가
물 위로 굴러 떨어지듯, 나는
때때로 자맥질하거나
수시로 부서지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내 삶의 궤도는, 억겁을 돌아
물결처럼 출렁거린다
수없이. 수도 없이

그저 그런, 내가
그 깊고도 깊은 물 속을
얼만큼 더 바라볼 수 있을런지
그 생각만으로도 아리다
그 하나만으로도 아프다
(신석정·시인, 1907-1974)

 

 

 

+ 연꽃

나는 늘 당신을 백합이라 불렀습니다.
우리가 약혼을 하고
당신이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
백합을 한아름 안고 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백합은 당신과
여러 면에서 닮았습니다.
향기로운 조선의 여인 같은
당신은 평생을 그랬습니다.

그러나 이제
내 곁을 떠난
당신을 연꽃이라 부르겠습니다.
연꽃이 당신과 더 닮았음을 압니다.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꽃잎을
스스로 떨어트린
파도 위에 떠 있는
지순한 연꽃이
당신이기 때문입니다.
(배인환·시인, 1940-)

 

 

 

+ 연꽃 피어 마음도 피어나고

해가 지면 어머니 치맛자락에 잠들고
떠오르는 태양에 다시 피어나는 얼굴

세상 온갖 시름
황톳물 같은 아픔이라도
지긋이 누르고
꽃으로 피우면 저리 고운 것을

이슬이라도 한 방울 굴려
나 또한 찌든 얼굴을 씻고서 다시 서리라

하여, 이슬이 있어야 하리
우리네 삶에도
이슬처럼 씻어 줄
그 무엇이 있어야 하리

다만 별도 없는 밤은 안 돼
이제라도 긴 숨을 들이쉬어
연뿌리에 공기를 채우듯
가슴 깊이 열정을 간직해야 하리

그리하여 연꽃이 피어나듯
내 가슴에도 꽃이 피어나리니

바라보는 눈길마다
소담스레 꽃피는 행복 송이송이
연꽃으로 흐드러진 꽃다운 세상이여
(이호연·시인)

 

 

 

+ 연꽃은 이슬도 머금지 않는다

혹시 보셨나요
이슬을 머금고 피어나는 연꽃을

아픔도 없이
평온함이 깃든 미소를 안고
피어나는 꽃이기에
연꽃은 이슬도 머금지 않는다

어떤 유혹도 거부하고
자신의 빛깔을 고집하지만
가식에 물들지 않았기에
연꽃은 이슬도 머금지 않는다

고운 향기로 세상을 넓히고
스스로 자신을 지키면서도
나눔의 의미를 너무도 잘 알기에
연꽃은 이슬도 머금지 않는다

오염된 세상에서
순수함을 그대로 지키며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을 다스릴 줄 알기에
연꽃은 이슬도 머금지 않는다.
(박우복·시인)

 

 

 

+ 연꽃

사랑을 두레박질하여
정갈히 길어 올리는 별빛
물의 순수
물의 살과 뼈
물의 정기

苦海의 뻘밭에서도
늘 청정한 태깔로
피는 까닭을 알려거든
水宮 속 깊은 물굽이로 자맥질하여
한 만년쯤
無心川 세모래로 흘러보아라

아, 우리가 눈 부라리며
탐하는 온갖 것
잠시 돌아서면 잊혀질
티끌
바람
먼지

내가 業으로
이승에 피는 까닭을 알려거든
한 만년쯤
수미산 깎아지른 벼랑에
먹돌 가슴으로 서 보아라.
(손해일·시인, 1948-)
*수미산(須彌山) : 불교의 世界說에서 세계의 중심에 8만 유순(由旬 : 1유순은 400리)의 높이로 솟은 산. 정상에는 帝釋天이 살고 중턱에는 四天王이 살며 해와 달이 수미산 주위를 회전한다 함.